오늘은 제가 2001년 즈음 모 웹진에 기고했던 글 재활용합니다.

어차피 그 웹진 21세기 초에 운영 중단되어서(...), 제가 다시 Pig-Min에 사용해도 큰 상관은 없을 듯 싶어서요. 고로 이 글 어디서 보신 기억이 나시는 분이라면, 그 글을 썼던 사람이 이 사람(...)임을 알아주시면 감사.

옛날에 쓴 글이라서 문체가 좀 다릅니다.


게임 in 영화 3. [거리의 무법자] (199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솔직히... 이거 아주 많이 심했죠.

격동의 시대였던 1980년대 말의 대한민국, 한국의 오락실은 캡콤(CAPCOM)사의 「스트리트 파이터, STREET FIGHTER) II」로 깡그리 뒤덮이는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물론 한국의 게임 센터에는 시리즈의 시작인 「스트리트 파이터 I」도 정식으로 소개되기도 했지만, '낯선 시스템'과 '조작성의 허접함' 등으로 인해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당시 「스트리트 파이터 2」의 인기는 요즘 DDR 열풍에 맞먹거나 오히려 한수 위라서, '대만산'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개조 기판과 복사 기판을 변두리 구석진 곳의 오락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심한 경우에는 오락실의 3-40대 가량되는 기계 전체가 이 게임 하나로만 진열되기도 했었다.

스트리트 파이터」로 시작된 대전 게임 열풍은 이후 2D와 3D시장으로 나뉘어져, 2D는 캡콤과 에스엔케이(SNK)가 나눠먹고 3D는 세가(SEGA)와 남코(NAMCO)가 양분해, 수많은 후속작을 내놓으며 비디오 게임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게 되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때문에 이 게임들에서 비롯된 '파생 상품'도 많이 등장했는데, 캡콤쪽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역시 여러 종류의 비공식(UNOFFICAL) 만화책과 몇몇 영상물이 만들어졌고, 그중 대부분이 한국에도 소개되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유명했던건 대만의 작품들을 한국에 소개하던 「천하만화」라는 잡지에 수록되었던 「스트리트 파이터」 만화 버젼이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대만의 만화들중 대부분이 견디기 힘들 정도의 허접인 덕분에, 「스트리트 파이터」 만화판은 이후 서울문화사를 통해 다시 소개된 「영건, YOUNG GUN」과 더불어 그 잡지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대원 문화사의 소년 챔프를 통해서 「스트리트 파이터 III」라는 '국산 만화'도 소개되었는데, 지독히도 허접한 만화의 퀄리티에도 불구하고 게임 자체의 인기를 등에 업고 '만화영화'까지 제작되는 '긴급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물론 '캐릭터 판권' 따위와는 상관없이 만들어졌다.)

「거리의 무법자」라는, 제목부터 끓어오르게 하는 이 만화영화가, 바로 문제의 그 작품이다. 1992년 9월에 비디오로 제작된 이 작품은, '여름은 우리가 책임지겠다!'라는 무책임한 문구를 담고 있으니 아마 극장 개봉도 강행한 듯 싶은데, 놀랍게도 50분 러닝타임에 '2가지 에피소드'씩 이나 담고 있음은 물론, 그 상태로 '완결'시키기까지 하고 있어 엽기도를 높인다.

당시의 소년 챔프를 읽던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이 만화는 '류(RYU)'와 '켄(KEN)'은 물론 '바이슨(BISON, VEGA)'까지 도매급으로 망가뜨려서 독자들에게 '암울한 충격'을 주었는데, 여기서는 드디어 그놈들이 '움직이며 말까지 하니', 캡콤의 격투 게임을 사랑하는 소비자에게 철퇴와도 같은 고통을 안겨준다.

"서기 2010년, 제 3차 대전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앗아간 끝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재앙!? (비디오 커버의 작품 해설 中) ... 이라 우기며 시작되는 이 만화영화는, 시작부터 철저한 허접을 보여주며 달린다. 당연히 명작 「아키라(AKIRA)」와 비교되는 초반의 핵폭발은, 웬간한 아마추어 습작품보다 못한 퀄리티인 것은 물론, 만화에 관심있는 일반 중-고등학생도 저보다는 잘 하겠다는 생각이 들만큼의 '한심함'을 보여준다.

게다가 '핵전쟁으로 멸망한 미래'라는 거짓말 뒤에 등장하는 장면은, 제갈셍(켄)과 이소룡(류)가 1990년대 초반의 오락실에서 대전 게임을 하는 모습인데, 도대체 핵전쟁으로 멸망한건 어느 동네고 21세기의 모습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캐릭터가 새로 등장할 때마다 '타자기'로 3-4장의 설명문을 '천천히' 쳐주는데, 한두명도 아닌 아홉명이나 되는 등장인물을 그런식으로 모두 보여주니, 도대체 본편은 언제 진행될지 궁금한데다가 글씨의 크기 또한 '깨알'같이 잘아서 제대로 내용을 알아 볼 수도 없다.

50분밖에 안되는 시간에, 캐릭터 소개 일일이 '레포트'로 제출하고, 그 짧은 내용을 2부로 나누어 놓기까지 했으니, 스토리 전개가 떡이 되는 건 당연하다. 거기에 격투물의 필수인 '액션'조차 제대로 묘사되지 않음은 물론, 유일한 '여성' 캐릭터 춘리(CHUNLI)의 매력조차 확실하게 살리고 있지 못하니, 이 테이프를 데크에 넣고 10분만 넘어가면 보고있는 자신이 저주스러울 정도가 된다. 이 만화영화에 대해 길게 말했지만, 3자로 줄이면 다음과 같다. '쓰레기'.

그런데 요즘 '매드 비디오'라는게 유행이라고 한다. 「카드캡터 사쿠라」 1기 오프닝의 '엽기 실사판'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이 장르는, 최근 일본의 동인계에서 상당한 인기를 모으며 널리 퍼지는 추세라고 한다. 원래 이 장르의 원 뜻은 '짜집기 패러디 동영상'이라지만, 그 범위를 조금만 넓게 잡는다면 한국의 만화영화 중에서도 이쪽 부류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들이 꽤나 많다.

특히 「스페이스 간담 V」 등의 몇몇 한국 만화영화는, 극도의 '캐릭터 차용'으로 인해 일본에서도 '진지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관점으로 따지자면 「거리의 무법자」는 '베스트 리스트'에 오를수 있지 않을까? 도대체 세상 어디에서, '류'와 '켄'은 물론 '바이슨'까지 모조리 망가져주는, 「스트리트 파이터」 관련 동영상을 구할수 있겠는가!

이건 아무리 캡콤 게임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팬이라도 만들 수 없는 '암흑'의 수준인 게고, 세상 최악의 허접 만화만을 그려온 작가라도 흉내조차 불가능한 '극악'의 작품인 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재평가'받아야 하고, '엽기'를 사랑하는 일본의 마니아들에게 당당히 소개되어야 마땅하리라. 게다가 아직까지는 이 만화를 구한다는게 너무나도 쉽고 가격 또한 낮으니, '엽기'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하나씩 갖고 있어야하지 않을까? 이제는 일본의 '엽기'에 그만 감동하고, 그 눈을 내부로 돌릴 때다.(... 라고 말했지만... 정말 치가 떨릴 정도로 후지다... 흐흑...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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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가 오래전에 쓴 글이고.

약간의 업데이트를 하자면, [거리의 무법자]는 DVD로 출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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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List

  1. bluedisk 2007/08/06 03:34 # M/D Reply Permalink

    원작 만화가 있는건가요? 애니메이션만 있는게 아니고요?

    1. mrkwang 2007/08/06 03:36 # M/D Permalink

      bluedisk> 그걸 '원작'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있습니다.

      사실상 그 만화와 이 영상물의 공통점은 캐릭터 모양 정도밖에 없던걸로 기억하지만. (내용도 꽤나 틀릴거임.)

  2. 릿군 2007/08/06 11:12 # M/D Reply Permalink

    이 글 본 기억이 납니다. ┓-;
    뭔가 하이텔이나 넷츠고쪽과 관련있던 웹진 이었을거라 생각중.

  3. Leviathan 2007/08/06 12:07 # M/D Reply Permalink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메드무비였군요(......)

  4. 과객 2008/10/23 15:33 # M/D Reply Permalink

    음... 난 만화 재미있게 봤는데. 지금 생각하면 저작권 위반 표절도 맞긴 하지만, 만화속의 개그 센스는 허접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원작(?) 만화 이야기이고 애니는 본 적이 없네요.

: 1 : ... 4596 : 4597 : 4598 : 4599 : 4600 : 4601 : 4602 : 4603 : 4604 : ... 5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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