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간으로 2014/12/11(한국 시간으로 2014/12/12 새벽), 밸브에서 갑자기 스팀 홀리데이 경매(Steam Holiday Auction) 행사를 발표했습니다. 유저들이 아이템을 갈아 만든 보석(gem)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경매'인데요.

규칙 자체를 이해하는 것조차 너무 어렵다던가, 이해는 했어도 경매에 참여할 보석을 구하기 어렵다던가, 경매 시작 초반에 젬 복사 파동 때문에 아예 닫아버렸다던가 등의 문제가 있긴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흥미롭고 새로운 시도라 생각해서 1회부터 지금까지 30개의 경매를 이겼고, 끝나는 날까지 좀 더 할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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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밸브는 무엇을 노리고 '스팀 홀리데이 경매'를 시작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1. 가비지 아이템의 대량 처분

'스팀 커뮤니티 마켓'과 '스팀 트레이딩 카드'는 신의 한수였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뱃지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카드를 사고 팔아왔습니다. 트레이딩 카드 모아 까면 뱃지 나온다는건 다들 아실텐데, 문제는 뱃지 까서 나오는 '이모티콘'과 '프로파일 배경화면 그림'입니다. 얘네는 정말 쓸 데가 없어요.

스팀에서 게이머들끼리 '이모티콘'까지 써가며 채팅할 일은 별로 없고, 설령 사용하더라도 그 많은 종류를 다 쓸 일은 없습니다. '프로파일 배경화면 그림'도 정말 이쁜거 나오면 한번쯤 바꿔볼 뿐, 나머지는 쓰지도 보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일반 게임의 부산물이면 누군가 최저가에 사줄지도 모르지만, 여름과 겨울 대형 세일의 부산물은 정말 쓸 데 없습니다. 한정품이지만 귀한 것도 아닌데다 크게 멋있지도 않아요. 사용할 일도 없고 팔리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스팀 유저들의 수많은 보관함에는 무지막지하게 많은 가비지 아이템들이 널려있었습니다. 각 유저들은 보관함이 지저분해져서 짜증나는 정도지만, 스팀 서비스를 운영하는 밸브 입장에서도 굉장히 골치였을겁니다. 유저들이 원하지도 사용하지도 않는데, 영원히 거기 자리잡고 DB와 트래픽 등을 잡아먹고 있으니까요. 계속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다, 특히 여름과 겨울의 대형 세일때는 훨씬 더 많은 가비지들이 대량생산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유저가 지워버리는 기능을 넣을 수도 없는게, 그 데이터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걸 밸브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되었을테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아주 좋은 처리방법이 생겼습니다. '스팀 홀리데이 옥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보석(gem)'이 필요한데, '보석'을 얻으려면 '아이템'을 갈아버려야 합니다. 원하지도 않고 사용하지도 않는 아이템을 처리하면서 뭔가 반대급부를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죠.

아이템 종류마다 제공하는 보석의 숫자도 다릅니다. 트레이딩 카드는 뱃지를 만들 소중한 재료니 보석을 1~20밖에 주지 않지만, 게임의 배경화면이나 이모티콘은 10~80까지 줍니다. 그런데 여름과 겨울 세일 때 나온 아이템은 보석을 100이나 줍니다! 여름과 겨울 세일의 아이템에 더 많은 보석을 준다는 것은, 밸브가 그만큼 더 없애버리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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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인딩 오브 아이작]의 트레이딩 카드는 보석을 12밖에 주지 않는데,
[슈퍼 미트 보이]의 이모티콘은 60이나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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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 큐브 : 비터스위트 팩토리]의 배경화면은 보석을 10밖에 주지 않는데,
2014년 여름 세일의 배경화면은 100이나 주는.

이러다보니 여름과 겨울 대형 세일의 이모티콘과 배경화면도 거래가 시작되어, 젬 복사 문제 터졌던 초기에는 0.04$까지 갔고, 정상화된 나중에는 0.08~0.1$까지 가격이 상승하기도 헀습니다. 그 전에는 최저가격인 0.03$로 올려놔도 거의 거래되지 않던 것들이 '보석'으로 갈기 위한 구입이 생겨난거죠.

가비지 아이템을 없앰으로써 밸브는 승리했습니다.



2. 경매에 참여할 보석이 없다면 커뮤니티 마켓에서 지르라

대부분의 스팀 유저들은 아이템을 몇 개만 보유해왔고, 뱃지를 몇 십개 이상 만드는 헤비 유저라도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제리얼넷 에이전트를 하며 잡동사니 아이템을 많이 쌓아놓고 있었지만, 직접 만든 보석은 20,000이 되질 않습니다. 경매에 참여하고 싶은데 보석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스팀 커뮤니티 마켓에 가서 구입하면 됩니다. 보석 1,000개 단위로 묶어 거래 가능하니까요.

저도 보석을 여러차례 사며 시세 변동을 꾸준히 봐왔는데요. 스팀 홀리데이 경매가 시작된 첫날은 젬 복사 때문에 가격이 폭락했지만, 정상화된 후 첫 경매가 시작되기 전까지 0.6$ -> 0.7$ -> 0.6$ -> 0.7$의 비교적 낮은 가격에서 오르락내리락 했고, 슬슬 경매가 물오르게 된 후에는 1.1$ -> 1.3$ -> 1.2$로 대폭 오른 가격대에서 변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실제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은 스팀 유저 중 극히 일부일겁니다. 하지만 경매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자신의 잡템을 갈아 보석 만들어 팔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즉 경매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보석을 팔며 그 주변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커뮤니티 마켓의 거래는 15%의 수수료가 차감됩니다. 10%는 해당 게임을 만든 회사가 갖고 5%는 밸브가 갖는데, 경매에 참여할 보석은 밸브가 15% 모두 먹죠.

보석 거래가 활성화되며 수수료를 차지한 밸브가 승리했습니다.


3. (굳이 안해도 되는) 경쟁 유발

이번 경매 행사는 45분마다 1회씩 돌아가는, 각 게임당 총 100개의 게임을 걸고 하는 행사입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곧 홀리데이 세일이 돌아오기 때문에 대부분의 게임을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이번 경매가 아니더라도 다 살 수 있는 물건들입니다. 굳이 힘들게 보석 바꿔서 경매할 필요 없어요.

그런데도 경매에 몰렸습니다. '경쟁' 때문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매장 첫 화면으로써 가장 많은 주목과 비딩을 받은 게임들 1페이지.

위 스크린샷을 한국 시간으로 2014/12/16 오후 1시쯤 찍었는데요. 그나마 여러 경매가 지나간 다음 분위기가 좀 가라앉은 후에 찍었는데도, 보석 1,000개를 약 1$로 볼때 거의 정가에 낙찰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경매에 참여할만한 사람 대부분이 홀리데이 세일 곧 온다는걸 알고 있을텐데도 굳이 저기서 경매하고 있는 이유는? '경쟁이 재밌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이 화면은 약과입니다. 경매 1~2회때는 15$에 구입할 수 있는 [카운터 스트라이크 : 글로벌 오펜시브]에 70,000개(42~49$)가 넘는 보석으로 상위입찰한 사람도 있었고, '사용할 수 있는 시간 제한'이 걸린 '2014 휴일 프로필 배경'에는 1,000,000개(600$~700$) 이상을 건 사람도 있습니다.

안 해도 되는 경쟁을 만들어 폭발시킨 밸브가 승자입니다.



4. 경매로 따낼 자신 없으면 그냥 지르라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덜 유명하고 경쟁이 덜 치열한 게임들에 주로 참여했고, 초반에는 실수로 10,000 개 이상의 보석을 쓰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1~2,000개 정도에서 낙찰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목받는 게임 대부분은 정가에 낙찰되는 예도 많은데다, 종료 몇 초 전에 치고 들어오는 스나이핑도 치열해 이길 엄두도 잘 나지 않습니다.

게임은 괜찮아 보이는데 경매하기 힘들거 같으면, 그냥 돈으로 사면 됩니다. 개인적으로도 이번에 정가로 하나 구입했는데요. 세일 곧 올거 아니까 찜 목록에도 많이 넣어놨습니다.

누구나 아는 아주 유명한 게임은 홀리데이 세일 때 메인에 떠 주목을 받겠지만, 덜 유명한 게임들은 스팀 깊은 곳에 묻혀있을겁니다. 그런데 이번 경매에서 덜 유명한 게임을 발견하고 찜 목록에 넣어둔 사람들이 많다면, 바로 다가올 홀리데이 세일때 판매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질 겁니다. 즉 이번 경매에서 홀리데이 세일을 대비한 추가 노출 기회를 얻은 게임들도 적지 않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도 경매 목록 전체를 뒤져가며 많은 게임을 접했는데, 이 일을 하면서도 생전 처음 보는 게임들이 제법 많았으니까요. 그 중 몇 개는 낙찰받을거고 몇 개는 세일때 구입하게 될겁니다.

더 많은 판매 가능성을 만든 밸브가 승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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