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인디 게임을 어떻게 그리 잘 아시나요?' 만남 장소에서 들은게 아니라 끝난 후 집에 가다가 들었는데... 추운 날 길거리에서 할 수 있는 대답이 그리 길지 않아 요점만 듬성듬성 말한거 같아, 여기에 조금 더 길게 적어봅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향유하고 추구해온 문화 중 상당 부분이, 왠지 모르게 '마이너'나 '인디' 혹은 'B급' 내지 '쌈마이'라 불리는 것들이었지요.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몇 년이 흐른 후 쌓인 과거를 살펴보니 그렇더군요. 영화도 음악도 어느정도 거쳐본 후의 일입니다. 그렇다고 양지의 메이저를 배격하며 음지의 인디만을 사랑한 것도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물 밑의 것'을 더 좋아했던 거 같네요.

이제 게임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20세기의 저는 일반인이었지요. 물론 그 전에도 이런 저런 게임 겪어봤지만 그리 몰입했던것 같지도 않고, 그냥 보통 사람들이 플레이하는 수준으로나 접근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변한게 21세기 초였는데... 문득 PC로 뭔가 게임을 하고 싶어졌는데, 당시 국내의 PC 게임 시장이 매우 심심해져서 제대로 하려면 해외 오더를 치는게 유리한 시점이었고,
컴퓨터 사양도 심각하게 낮아서 휘황찬란한 신작 게임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해외 오더야 CD / DVD 제법 사댔으니 게임 들여오는데도 그리 어렵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대체 뭘 사야 좋을까? 요게 좀 문제였던 거죠.

- 요구하는 PC의 사양이 낮아야 한다.
- 뭔가 (당시의)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종류의 게임들이어야 한다.

고심하다보니 '어드벤쳐' 장르가 나오더군요. 사실 저는, 이른바 북미에서 어드벤쳐가 물밀듯이 쏟아져나오던 그 시절에는, 어드벤쳐 거의 안 했습니다. 루카스아츠(LucasArts)니 시에라(Sierra)니, 간만 본 정도로 끝냈죠. 제대로 어드벤쳐 잡은 건 21세기 이후고, 그래서 국내의 여타 게이머들과 어드벤쳐에 대한 접근이 매우 다릅니다.

장르는 정했다 치고 무슨 게임을 살까? 인터넷이 왜 좋겠습니까. 한국의 인터넷으로는 부족하다 쳐도, 영어권 홈페이지에서 잘만 찾으면 괜찮은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게임부머즈(GameBoomers)를 찾게 되었습니다. 여기는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상상조차 하기 힘들 구성원들이 모여있는 어드벤쳐 게임 포럼인데요.
게임 공력이 높은 정도가 아니라, '결혼한 딸이 집에 다녀갔다' 식의 대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고연령 플레이어들이 즐비한 곳이라서, 덕분에 분위기가 제법 괜찮은 편입니다. '어떤 어드벤쳐 게임을 하면 좋을까요?' 라는 질문에 나온 답이 [롱기스트 저니(Longest Journey)]였을 겁니다. 그래서 게임을 구하게 되고, 엄한데서 막히는 바람에 거의 반 년(...)이 걸려 클리어하게 된 후, 올라가는 엔딩 타이틀 롤에 무한한 감동을 느끼며 빠져들었죠. 뭐, 낚인 겁니다. 그렇죠.

그렇게 해외의 어드벤쳐 포럼에 다니다가, 국내에도 어드벤쳐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약간 거래도 해보다가, 포스트 어드벤쳐(Post Adventure)의 전신 쯤 되는 곳을 알게 되고, 제가 싸이월드에 어드벤쳐 게임 동호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있다가, 포스트 어드벤쳐 생긴 다음에 잠깐 동안은 그냥 있다가, 거기 가입해서 활동 좀 하다가, 운영자 비스무리한 거 까지 갔고, 현재까지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적었다시피, 저는 어드벤쳐에 대한 접근이 한국의 일반적인 게이머와 매우 다릅니다. 원래가 '인디'같은 것에 빠져있기도 했고, 한국보다는 해외 포럼에서 먼저 진지하게 접근하게 되었으며, 또한 루카스아츠 - 시에라 등을 훌쩍 뛰어넘은 후 [롱기스트 저니]부터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하기도 했죠. 그래서 그 이후 어드벤쳐에 대한 접근도 좀 다르게 들어갔는데, '인디 어드벤쳐' 쪽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발을 너무 깊게 딛은 것이죠. 아마 '국내에서는 뻑하면 루카스아츠 운운' 하는 상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겁니다. 사실 해외도 이런 경향이 있지만, 다른 쪽으로도 고르게 뻗어가고, 또한 신작에 대한 관심도 높은 편이니까요. Pig-Min이 최초로 인터뷰한 [다크 폴(Dark Fall)]의 제작자도, 정규 유통망을 거치기 전 집에서 구워 팔때 구입한 인연으로 알게 된 거니까요. 그 후로도 [배드 밀크(Bad Milk)] 등의 인디 어드벤쳐들을 몇 편 구입하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프리웨어'라는 세상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해외 포럼 등지에서 보고, 플레이해보고, 국내에도 소개하곤 했지요. 이른바 '언어의 장벽' 덕분에 그렇게 널리 퍼지지는 못했을테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가, 지금은 가고 없는 게임 웹진 Ngamerz의 필자가 됩니다. 나름대로 '게임 선정은 자유'인 방식이라 원하는 걸 쓰면 되긴 했는데... 애매한 딜레마가 생겼죠. 이른바 대작급은 할 사람들이 수두룩하고(게다가 그들이 나보다 훨씬 잘 쓰고), 일본어는 못 하니까 정식발매라도 하기 전에는 일본 게임 리뷰는 접어야 하니까, 제 운신의 폭이 매우 많이 좁아지더군요. 그러다가 생각한 것이... '남들이 절대 다루지 않는 인디 게임은 어떨까?'라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전에 어드벤쳐 찾던 가락에서 조금 더 서핑을 하기 시작했죠. 자료 참 많이 나왔습니다. 찾고 찾고 또 찾았지요. 그러다가 미묘하게 되어 Ngamerz는 가고 Pig-Min이 생기게 되었지만... 마지막 기사로 5년 정도를 망라한 [어드벤쳐 게임은 죽었는가?]라는 장문(?)의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으니, 그정도면 저는 된거겠죠.

뭐 이렇습니다. 그동안 제가 거친 과정을 짧게(?) 정리해봤는데, 대충 이해 가실지 모르겠네요. 혹시라도 길지 모르니 조금 더 짤막하게 줄여보자면.

- 원래가 '인디' '마이너' 'B급' '쌈마이' 등을 좋아했다.
- 갑자기 PC로 게임을 하고 싶어졌는데, 낮은 PC 사양 - 해외 오더할만한 장르를 생각해보니 '어드벤쳐'더라.
- 남들과 다르게 '어드벤쳐'를 접근하다보니, '인디 어드벤쳐'를 하게 되더라.
- Ngamerz 필진이 되었는데, 남들이 안하는 분야를 리뷰하려다보니 그게 바로 '인디 게임'이더라. 그래서 예전에 '어드벤쳐' 자료 찾던 가락으로 '인디 게임'을 찾게 되었다.

대략 이정도가 되겠군요. 뭐 그랬던 겁니다. 저렇게 하다보니 이렇게 된거죠.

이로써 그날 밤 질문의 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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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싱하형 2007/01/21 00:34 # M/D Reply Permalink

    상당히 복잡한 히스토리 ㅠ.ㅠ

    1. mrkwang 2007/01/21 01:01 # M/D Permalink

      싱하형> 하나도 안 복잡함.

  2. AmbitiousK 2007/01/21 01:04 # M/D Reply Permalink

    그렇군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1. mrkwang 2007/01/21 02:19 # M/D Permalink

      AmbitiousK> 그렇지요.

: 1 : ... 5096 : 5097 : 5098 : 5099 : 5100 : 5101 : 5102 : 5103 : 5104 : ... 5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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