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라고 말할수는 없는데, 얼마전 모처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에 집착(?)하는 쪽이었는데, 실제로 그런 아이디어가 강점이기도 한 곳이었습니다.

"이쪽에서 만들고 구상했던 것과 너무나 비슷한 게임들을 계속해서 만드는 곳을 찾았다. 만들어 내놓았던 것은 저쪽에서 참조했을 수 있다 치더라도, 구상만 한 것까지도 비슷하다. 베낀게 아니라 우연히 똑같은 생각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무서울 정도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래서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

영화 / 무협-환타지 소설 중 일부는.
- 이쪽이 생각하던 것과 비슷한게 먼저 나오면, 표절/아류 의혹을 피하기 위해서나 작가적 자존심 때문에 기획을 엎어버린다.
- 비슷한 소재 / 아이디어가 비슷한 시기에 나오는건 당연하고, 그렇다면 각본/기획 먼저 써 빨리 만드는 쪽이 이긴다.

하지만 현재 이 상황은, 위보다 아래에 적을 얘기에 가까운데...

- 빛나고 참신하고 아무도 안 한 아이디어 같아도, 세계의 누군가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 사실 빛나고 참신하고 아무도 안 한 아이디어 따위는 한개도 안 중요하다. 완성해 발매하고 인정과 평가를 받는게 중요하지.
- 러프 아이디어 보다 그걸 풀어가는 과정과 구성이 훨씬 중요.

---


소비자(게이머) 입장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재미와 완성도입니다. 세상의 누군가 비슷한 생각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별로 기발하지도 않고, 사람들은 완성되어 발표된 것만 알 수 있고 즐깁니다. 이에 관련해서는, 정말 기발했지만 결국 남 좋은 일만 한 [하비스트 : 매시브 어카운트] 개발사의 블로그 글을 보셔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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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던이 2011/01/08 22:28 # M/D Reply Permalink

    너무 극으로 치닫는건 어느쪽이든 좋지 않다고 봅니다.

    사실 뭣도 아니면서 '내 아이디어는 최고라능 ㅎㅇㅎㅇ' 하면서 자위하는 사람도 많긴 하지만
    진짜 참신한 아이디어를 위해 많은것을 희생하는 사람들도 꽤 있거든요.

    그런걸 보고 '저놈은 제대로 보여주는것도 없으면서 너무 참신성에만 목매는거 아니야?' 또는 '지가 뭐 잘났다고 아이디어 하나만 가지고 상업시장에 고개를 디밀어?' 하고 고깝게 볼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많아야 게임이란 매체의 한계와 가능성을 끊임없이 갱신할 수 있고, 새로운 물고를 틀 기회가 많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게임뿐만 아니라 IT관련 하드웨어 분야도 비슷한 딜레마에 빠져있습니다. 하드웨어 쪽은 워낙 자본이 많이 투입되니 당연히 '성공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 이 물론 중요하겠지만, 정말 새로운 흐름이나 '다음세대를 위한 아이디어' 는 다 엉뚱하고 '그냥 참신하기만 한' 생각들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오늘날 하드웨어 시장은 그 규모가 너무나 커서 그저 '아이디어 검증용' 으로 제품을 기획할 수는 없기때문에 따로 R&D팀을 만들어 연구하는 흐름입니다만, 게임은 아직 그런것이 생길정도로 성숙하지 못한 시장이라 이러한 기능을 인디쪽에서 지속적으로 해줘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불과 10년전만 해도 누구도 터치기술이 이렇게 대세가 될 줄은 몰랐고, 3D로 구현한 영화가 세상을 발칵 뒤엎을 줄 몰랐지요. 처음 시도는 다 뻘짓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끊임없이 시도와 실패를 거듭해왔지요. 대기업은 이러한 작은 시도들 속에서 그 가능성을 보고 인재를 끌어모아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깔끔하고 세련되게 다듬었을 뿐입니다.



    사실 인디쪽도 많이 상업화가 진행되서 '먹고살기 위한 직업' 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아지다보니 '닥치고 잘팔리는 게임을 만들자' 쪽으로 흐름이 바뀌어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흐름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본래의 인디정신을 망각하고 그저 '모자른 상업게임'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면 그건 더이상 인디가 아니게 된다고 봅니다. 그저 자본이 부족해 시대를 못쫒는 미숙한 게임이 될 뿐이지요.


    물론 참신함과 상업성이 잘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인디게임의 모습이겠습니다만, '인디게임 개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 과 '인재' 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니만큼 둘중 하나에 집중할수밖에 없게되고, 아이디어로만 승부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이 두가지 요소를 잘 절충해내 찬사를 받은 경우는 실력도 있지만 운도 많이 따라줬다고 봅니다.)

    1. mrkwang 2011/01/09 00:27 # M/D Permalink

      지나가던이> 전 지나가다라는 닉을 상당히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그건 제 개인적 취향이니 아무래도 좋고요.

      아이디어 지상주의를 굉장히 경계하고 경고하는 입장이라, 그에 대해 시리즈 글을 쓸까도 생각했지만 일단은 접은 상태고요.

      본문에 예를 든 [Harvest : Massive Account]의 경우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였고 저도 좋아했습니다. (그러니까 인터뷰까지 땄죠.) 하지만 상업적으로는 망했는데, 개발자 본인은 장기간에 걸친 2번의 공개 베타때문에 사람들의 반응이 식었다고 판단하지만(그게 일부의 이유이기도 하지만), 진짜 큰 이유는 '모두가 파괴되어야만 게임이 끝난다'(즉 승리 엔딩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방식 때문입니다. (2번의 베타 때문에) 그 사실이 잘 알려져 있어서 게임을 하기가 싫어지고, 저 또한 올해 와서야 게임 하나의 엔딩을 보게 되었습니다. (부서지기 시작할 때 컴퓨터 앞을 떠나는 식으로...) 공개 베타를 2번이나 했으면서 그 반응을 못받았을리 없을텐데, (다 부서져야 끝나는) 독특한 아이디어에 대한 작가적 자존심 때문에 그냥 놓아둔 요소라고 봅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졌냐면, 플래시로 [Space Game]이 나왔습니다. 철저하게 [Harvest : Massive Account]의 아류고, 개발자 본인도 그 사실을 게임 설명에 적어 인정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Space Game]이 훨씬 흥했고(속편까지 나왔고), 모르는 사람들은 [Harvest : Massive Account]를 그 아류라 생각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It’s even more famous than Harvest itself, so sometimes I read in comments and forums messages like “oh, this looks like a browser game I played somewhere…”(Harvest 개발자 블로그에서.)> 기본 틀은 거의 유지하면서 '다 부서져야 끝나는' 부분만 빼버렸는데 말이죠.

      독특한 아이디어가 중요한게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합당한 재미를 주고, 그 사실이 잘 알려지는 것이 1000배쯤 더 중요합니다. 재미있는 요소 엄청 갖고 '일부러 못 만든듯' 싶은, 오늘 리뷰 올린 [Hinterland]도 그런 예 중 하나가 되겠군요.

      P.S. : 전 '아이디어 지상주의'에 먹힌 게임 예를 그냥도 5개는 들 수 있습니다. (좀 더 생각하면 더 많이 들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Harvest : Massive Account] / [Hinterland]까지 2개, [Galcon] vs [Eufloria](Galcon이 그렇게 나쁜게 아니어서 예외적인 경우지만.), [I-Fluid](물방울이 돌아다니는 게임이라는 점은 굉장히 획기적이었지만 그 외 부분은 전적으로 엉망진창.) ,[Cut & Paste](우리쪽 게임이지만 여하건.). 반면 '좋은 아이디어를 잘 살려 만든' 게임 예도 들 수 있습니다. [Karoshi], [Uplink], [World of Goo], [Braid](사실 '시간 되돌리기'는 [페르시아의 왕자 : 시간의 모래] 영향일듯. 엄밀히 말하면 완전 오리지널 아이디어는 아닐듯.). 전자와 후자의 진짜 차이는 독특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재미를 잘 살리고 완성도가 높은 것입니다.

  2. 지나가던이 2011/01/09 02:38 # M/D Reply Permalink

    별 생각없이 적은 닉네임인데 마치 툭던지고 가는듯한 뉘앙스라 기분이 안좋으셨을수도 있겠네요.. 다음부턴 닉을 바꿔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제 의견은 '완성도를 배척하고 아이디어에 몰두하자' 는 극단적 의견이 아니라 '아이디어 때문에 다른 부분에서 실패한' 게임들에 대해 '존재해선 안되는것' 이란 낙인만은 찍지 말자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게임들은 물론 재미가 없으니 혹평을 들었겠고, 자연히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겠지만, 그러한 '시도' 자체는 존중해주고 박수쳐주는 어떤 '인디적 마인드' 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의견이었습니다.

    예컨대 Harvest가 이루지 못한 성공을 같은 아이디어를 차용한 space가 거머쥐었다는 부분에서도, 비록 Harvest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러한 참신한 시도 자체는 가치있는 실패로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Harvest가 작가적 고집 없이 '모두 부서저야 끝나는' 것을 손쉽게 뺐다면 아마도 harvest는 그다지 독창적인 상태로 완성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애초에 남의 의견을 듣고 그 부분을 쉽게 빼버릴 정도로 개방된-나쁘게 말해 우유부단한-성격의 개발자였다면 harvest 처럼 남들이 독특하게 봐줄만한 독창적 시스템을 떠올리고, 완성단계 까지 관철시킬만한 발상력이나 추진력을 갖지 못했을거라는게 제 개인적인 추측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얘기 저의견 다 듣다보면 본래 의도한 그런 시스템은 거의 중화되서 사라져버리게 되니까요.)

    따라서 그러한 '독창적인 고집' 이 있는 자들이 (비록 실패할지언정) 가치있는 실패를 거듭하는 것에 대해 혹평 하고 'don't try this at home' 으로만 몰아갈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실패도 일종의 '인디적인 멋' 이자 '낭만-_-;' 이라 여기고 따스한 시선으로 보아주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정말 아스트랄하고 더욱 crazy한 아이디어들도 끊임없이 대중에게 공개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런 아이디어 분출을 통해 이종교합, 재구성, 재해석을 통해 더더욱 뛰어난 완성도의 아이디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인디게임 전체가 좀더 개방적이고 열린시각을 가져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이런 아이디어 위주 게임도 발전을 위해 억지로 사주세요' 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재미없는 게임은 당연히 질타를 받아야지요. 하지만 적어도 '그런 아이디어가 존재한다' 는 것 정도는 게임계에 족적을 남길 수 있도록, 그리고 엄청난 가능성들이 어느 개발자의 아이디어 노트속에 갖혀 영원히 잠들어있지 않도록, 인디게임계는 더욱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곳은 '인디' 니까요.



    PS. 그렇다고 인디계가 검증없이 아무거나 막 던져도 되는 그런 '막되먹은 시장' 이 되도 좋다는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당연히 '시장' 이란 수식어가 붙은만큼 상업성 부분도 신경써서 다듬어야 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함은 물론입니다.

    PS2. 제 의견을 '영화의 역사' 와 비교하면서 고려해주시면 뜻이 보다 잘 전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사 초기에 나온 수많은 '어이없는 시도' 들이 오늘날 영화기법 완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볼때, 아직 '시작단계' 에 불과한 게임계에서 '아이디어' 가 '상업성' 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니지 않나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지금' 은 말이지요.)
    채 놀아보지도 못한 아이가 사회인이 되기위해 공부에 집중하는것보단, 어렸을때 이짓저짓 하면서 신나게 놀아보다가, 나중에 적성을 찾게되면 그 부분을 발전시켜 나가는게 더 현명하지 않나 싶습니다. 일단 한번 규격화 되면 그 틀을 깨는건 정말 어려우니까요. 타 장르에 비해 아직은 자유롭고 비제도적인 게임계는 좀더 자유분방하게 놀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적어도 인디만큼은요. 상업적 설득력을 강화시키는건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지 않나 싶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정말 '영화같지도 않은' 영화인 안달루시아의 개 같은 관념주의 영화가 몽타쥬 기법 탄생과 컷씬의 함축적 사용법 연구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고, B급 싸구려 호러영화의 범람이 지금의 SFX기술의 시초이자 엄청난 발전을 있게 한 장본인이라는 점을 봤을때, 그와 비슷한 흐름으로 지금의 B급 '실패작 게임' 들이 나중에 '어떤 흐름' 을 있께 한 장본인으로서 재조명되고 재평가 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저는 그런 망상도 가끔 합니다..--;

    PS3. 어느 책에서 본건진 모르겠지만, 모든 분야에는 두가지 종류의 인재가 있다고 합니다. 한 부류는 개척을 잘하는 인재고, 다른 한 부류는 일구길 잘 하는 인재라고 합니다. 개척을 잘 하는 인재는 남들이 하지 않은 독특하고 참신한 생각을 잘하기에 자신의 몽상이나 꿈같은 뒤죽박죽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서스럼없이 드러내길 잘해서 남들이 보지못하는 면을 보고, 그것을 가지고 독특한 시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단, 이들은 사고의 보편성이 다소 떨어져서 '보편적으로 먹히도록 꾸미는' 것은 잘 못한다고 합니다.
    반대로 일구길 좋아하는 인재는 남이 던져놓은 아이디어나 어떤 초석 위에서 완성도 있는 '완성품' 을 만들길 좋아하는 사람들로서, 자신이 '새로운 시도' 는 잘 못하지만 남들이 벌려놓은 판에 뛰어들어 완성품으로 만드는 것은 잘한다고 합니다.
    아마 무슨 심리학 관련 책에서 본것같은데 어떤 주제로 나온 내용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만, 참 일리있는 분석이다 싶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harvest 개발자 같은 사람은 아마도 전자같은 부류일테고, space 개발자 같은 사람이 후자에 속한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두 부류의 인재 모두 충분히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고, 동등하게 인정받아야 한다는게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라 오직 결과물로만 전부를 판단하는 이 사회는 동의하지 않겠지만서도요. 뭐 사실 너무 이상주의적인 발상이긴 하죠;;)

  3. 마쿠 2011/01/10 13:43 # M/D Reply Permalink

    좋은 내용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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