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빌리져스(Virtual Villagers)] (2006)

제작사 : Last day of Work

발매일 : 2006

가격 : 19.99$

미국 캐주얼 게임계의 새로운 바람, 버추얼 빌리져스(Virtual Villagers)


나중에 올라갈 기획 기사에서 자세하게 적어보겠지만, 다운로드 판매를 통한 미국의 캐주얼 게임 시장은 기존의 패키지 시장이 다루지 못하는 틈새를 파고들며 꾸준한 성장을 해왔다. 그러면서 [비주월드(Bejewelled)] 등 양질의 히트작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반면 ‘어디선가 해본 듯한’ 류의 아류작들이 줄지어 양산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조금만 특이한 점이 있어도 눈에 팍 띄는 것이 요즘의 캐주얼 게임계인데, 오늘의 주인공 [버추얼 빌리져스(Virtual Villagers)]는 그중에서도 좀 많이 튄다.


저놈의 보석들 덕분에 밤 샌 사람들 많다.


  한 부족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RTS.


이렇게 써놓으니 농담 같은데... 저 녀석은 정말로 그런 게임이다.

기본 설정은 다음과 같다. ‘화산 폭발로 인해 살던 곳을 떠나온 소규모 부족의 6명은 어느 무인도에 도착하는데, 그곳에서 마을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는 ‘무인도 생존 게임’이라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부족 발전 시뮬레이터’에 가깝다. 소수의 인원으로 시작해 아이를 낳아 기르며 인원을 늘여나가고, 그러면서 나름대로의 문명을 발전시키며 더 나은 부족을 만들어가는 식이다.

[버추얼 빌리져스]는 일종의 갓 게임(God Game) 형식을 띄고 있어서, 플레이어는 부족의 각 멤버들을 마우스 클릭으로 들었다 놓으며 일을 시킬 수 있다. 물론 어느 정도 특정한 일에 익숙해지거나, 혹은 그 일을 우선적으로 하라고 지정해놓으면, 딱히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알아서 시행한다. 모든 일은 할수록 능숙해지며, 그에 따른 능력치도 같이 상승한다.

이 게임에서 캐릭터는 5 종류의 능력치를 갖고, 그와 대응하는 5개의 직업을 지원한다. 일단 먹어야 살 수 있으니 농부(Farmer)가 필요하고, 건물을 짓거나 보수해야 하니 건축가(Builder)도 등장한다. 기술을 개발해야 발전된 삶이 가능하므로 과학자(Scientist)도 있어야 하고, 아프면 치료해야 하니 치료사(Healer)도 나온다. 그리고 어찌 보면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면서도 직업으로 불러도 될지 좀 애매한, 번식을 위한 부모(Parent)도 있다.


'연구'(Research)를 잘 할 거 같은 이름 ‘영구’(YoungGu). ...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중요 포인트는 ‘실시간’.


위에서 설명한 기본 시스템은 사실 별거 아니고... 이 게임의 정말 중요한 특성은 ‘실시간’(Real Time)이라는데 있다. 세상에 실시간 게임 많긴 한데, 여기서는 조금 다르다. ‘게임을 하고 있지 않아도 계속 흐르는 시간’, 즉 실제 세상에서 흘러간 시간이 게임에 반영된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램상주로 깔려있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게임을 다시 시작할 때 그동안 흘러간 시간을 반영해 연산하는 식이다. (그래서 컴퓨터를 꺼두어도 반영된다.) 이 시스템은 개발사 라스트 데이 오브 워크(Last Day of Work)의 이전 작품인 [피쉬 타이쿤(Fish Tycoon)]에서도 사용된 요소이니, 회사를 대표하는 중요한 특징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물론 닌텐도 게임 [동물의 숲]도 실제 시간이 게임에 반영되기 때문에, NDS의 달력에 따라 여러 이벤트가 발생하기도 하고, 몇 주일 만에 들어가면 숲 속 동물 친구들이 안부를 물으며 반가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도 큰 변화가 없는 [동물의 숲]과 달리, 이 게임에는 ‘생노병사’가 있어서 태어나고 성장함은 물론 죽음까지 존재하기 때문에, 몇 주일 만에 다시 들어가도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는 숲 속 동물 친구들과는 다른 점이 많다.

그렇다. 켜놓지 않아도 실제 세상의 시간 흐름이 반영되고, 그에 따른 변화와 성장이 발생하는 시스템. 그것이 이 게임의 핵심적인 요소다.


몇 주일에 한 번 들어가서 동물들과 토킹 좀 한 후, 시간 남으면 온 동네 풀 뽑으러 다니는 게임.


캐주얼 게임의 범주에 들 수 있을 만큼, 이 게임을 한 번 플레이하는 시간은 짧다. 하지만 게임 전체의 플레이타임은 길어서, 몇 주일 혹은 그 이상도 걸릴 수 있다. 일반적인 RTS와 달리, 게임 속 마을의 발전과 변화의 속도는 상당히 더딘 편이다. 뭔가 뚜렷한 변화를 보려면 몇 시간 정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몇 분 정도만 플레이하면, 특기할만한 사항이 그다지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게임을 끄고 나와 다른 일을 하다가,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들어가 달라진 부분을 점검하며 마을의 성장과 변화를 지켜보게 된다. 별거 아닌 거 같은데, 해보면 예상 외로 상당히 재미있다. 고즈넉하고 느리게 진행되는 ‘슬로우 라이프(Slow Life)'를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미국 사이트들에 리뷰에 달린 댓글들을 살피다보면, 자식들을 포함한 가족들과 함께 즐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뭔가 ‘키우는’ 재미도 있고, 그래픽도 아기자기한 맛에 봐줄만 하며, 이른바 ‘폭력적이지 않은 게임’이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약 90명까지 번식시킬 수 있는 캐릭터 하나하나에 이름도 지어 붙일 수 있으니, 세상 어딘가에는 ‘빌(Bill)이 농부의 극에 달했어요.’라던가 ‘게이츠(Gates)가 새로운 집을 지었네요.’ 같은 대화가 오가는 가정도 있을지 모르겠다.


샘가에서 수다중인 애엄마 전대 3인방의 평화로운 한 때.


그런데 이 게임, 상당히 괴하다.


위에서도 말했듯, 이 게임은 실시간으로 돌아가며 ‘생노병사’의 흐름을 갖고 있다. 태어나고 성장하며, 아프고 죽기도 한다는 거다. 너무나도 특징적인 이 요소들이, 역으로 게임을 상당히 괴이하게 만들어버린다.

사람은 먹어야 살고, 그것은 이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걸 뒤집어 얘기하면, ‘굶으면 죽는다.’ 여기서도 똑같다. 마을에 먹을 거 떨어지면 굶어 죽는다. 게임의 시작에는 딸기나무가 과일(Berry)을 제공하지만, 그게 다 떨어지면 경작해야 먹거리를 마련할 수 있다. 공짜로는 안 된다. 연구소에서 열심히 기술(Tech) 지수를 올려, 농업(Farming)을 사야한다. 그런데 이걸 게임 내에서 알려주지 않는다. 공식 홈페이지의 FAQ를 보거나 여기저기 인터넷 사이트의 공략을 찾아봐야 하는데, 뒤늦게 알고 실행하려 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연구 수치가 올라가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부족의 몰살이다. 그것도 마을 전체에 뼈다귀만 앙상하게 남아 폐혀가 되어버리는. 개인적으로 2번이나 이런 전멸을 당해봤다.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한 맛이 강한 게임이기에, 오히려 충격 또한 몇 배로 강렬했다. 그런데 이런 흉한 광경을, 여러 종류의 별별 게임을 다 즐기며 볼 거 못 볼 거 다 접해본 성인조차 충격 먹는 상황을, 온 가족이 플레이하는 집의 아이가 본다면 반응이 어떨까? 상상조차 하기 싫다.

또 다른 괴함은 ‘생’에서 발생한다. 미디어가 발달한 21세기답게, 아이가 생기는 방법은 모두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가는 다리 밑에서 주워오거나 황새가 물고 오는 것이 아니라, 성인 남녀가 어두운 곳에서 손을 잡으면 생긴다(...) 이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남자 혹은 여자를 마우스로 집어 이성에게 갖다 대면, 랜덤한 확률로 눈이 맞아 어두운 곳에 손잡으러 들어가고(...), 그보다 조금 더 낮은 확률로 애가 생긴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치더라도... 이 게임에 ‘부족’은 있지만 ‘가족’이란 없다. 즉 누구랑 누구가 손잡아서 애가 생겼고, 누가 누구 남편이고 부인이다 같은 개념이 전혀 없다. ‘철수’와 ‘영희’가 애를 만들다가 실패하면 ‘동수’가 ‘영희’랑 다시 만들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동진’과 해보고, 이래도 안 생기면 ‘성진’과 또 해보고... 이런 식의 족보 만들기 참 난감한 상황들이 연출 가능하다, 아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캐릭터들의 성장은 곧 노화를 의미하므로, 새로운 생명들을 태어나게 하는 ‘번식’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으니까 비슷한 연배의 1대들끼리는 허용한다 치더라도, 2대나 3대 이상 내려가면 핏줄이 엄청나게 꼬일 수밖에 없어지는데... 물론 세계관 자체가 ‘부족’ 우선의 세상이고, 폐쇄된 공간이라 다른 곳과 피 섞기가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천진난만한 아해들에게 이 얘기 설명하려면, 머리가 많이 아파올 것이다.



어허야 디어야. 올해도 풍작일세. ... 경작을 알지 못해 멸망한 이전의 두 종족께 잠시 묵념.

“우리 심심한데 어두운데서 손이나 잡을까?” “아이 참, 몰라요.” 애가 보고 있는데 무슨 짓이냐!


그리고 게임을 대표하는 속성 ‘실시간’ 자체도 괴함의 일부를 마련해준다. 비록 더디게 진행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며칠 혹은 몇 주일동안 변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바쁜 나머지 몇 주일을 무관심하게 뒀다 돌아오면, 또 하나의 멸족된 마을을 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일시멈춤(Pause)' 모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바쁜 사람은 그런 것도 잊어먹은 채 종료할 테니...


새로운 시도, 그만큼의 반작용.


이 게임은 ‘실시간’과 ‘생노병사’라는, 기존의 작품들에서는 보기 드문 요소를 바탕으로 잘 만들어진 RTS 계열의 게임이다. 캐주얼 게임처럼 한 번 플레이하는 시간은 짧지만 전체적으로는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슬로우 라이프’ 형 부족 경영 & 육성 시뮬레이터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특이한 만큼의 괴함도 같이 지녔고, 그래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건전한 비폭력 교육형 게임’의 목적에서는 조금 벗어나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재미가 워낙 좋아서, 미국의 인디 - 캐주얼 게임계에서는 상당히 각광을 받는 중이다. 발매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부터 ‘속편’ 제작한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그 제목에 ‘2장(Chapter 2)'이라고 붙은 걸 보니 길고 긴 시리즈로 만들려는 것 같다. 속편은 더 재미있게 나올 것을 기대하고, 제발 부탁이니 초반에 굶어죽지 않게 튜토리얼이라도 추가해주길 바란다.



공식 홈페이지의 속편 예고 페이지 그림. 동굴 통해 어디로 가는걸 보니,
결국 같은 섬에서 돌아다니는 건가...


게임 받기 : 데모 다운로드 & 게임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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