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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신작좀 내주면 안될까? (안돼?)

손노리 군, P맨, 그리고 패스워드. 한국의 1세대 게임 개발사 '손노리' 하면, 단박에 웃음과 함께 떠오르는 마스코드 들이다. 한국 패키지 시장의 황금기였던 90년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소프트 맥스'와 함께 한국의 2대 대형 개발사로서, 주옥같은 게임들을 만들었던 '손노리'. 오늘은 추억을 공유할 겸, 그리고 한국의 게임 문화 발자취를 손노리를 통해 다시 돌아보고 싶어, 첫눈 내리는 겨울날 키보드나 어루만져줄까 한다.

 “컴퓨터 사니까 깔려있던데?” 컴퓨터 사면 깔려있던, 대 국민 액션게임 [다크사이드 스토리.] 당시 액션게임 하면 어둑어둑한 분위기에, 쇠 파이프와 피칠 갑이 가득 하였기에, 밝고 명랑한 분의기의 [다크사이드 스토리]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우정의 무대, 박카스F, 그리고 가분수 P맨과 그의 친구(?)들이 개그 향연을 펼치던 추억의 명작. 액션 부분만 두고 봐도 잘 만들어진 수작이지만, 이 게임의 묘미는 단연 개그였다. 정말 게임을 하는 내내, 개그프로를 보듯 웃음을 참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필자에게 남는 것은 게임의 여 주인공, 수희가 답하던 저 한마디. ‘게임이 컴퓨터를 사니 깔려있더라’ 이 말에서 처음으로 필자는 불법복제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전작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순수 한국에서 만들어진 한글 롤플레잉 게임으로서, 현재까지도 제대로 된 후속 작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은 게임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넘버 1, 선두주자인 셈이니, 당연히 많이 팔렸을까? 아니, 필자만 해도 플로피 디스크에 복사해서 즐겼었다. 다름이 아니라, 게임을 파는 곳도 없었고, 게임을 사야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몰랐으며, 결정적으로 돈 없는 학생이 무슨 게임을 사겠는가? 하는 아주 기본적인 불법유저의 3원칙을 충실히 따른 셈이다. 누구나 그렇듯 당시 사람들은 불법복사가 큰 잘못이라는 것을 몰랐다. 남들이 다 했고, 그렇게 팔았으며 그래서 그렇게 했을 뿐. 불법복사 하면 시장이 작살이 나는 거라고 누가 알려 주더란 말인가, 실로 무지가 만든 범죄가 일상이 되어가고 있던 90년대였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와 [다크 사이드 스토리]가 지나가고, 90년대 중반 한국의 게임 시장은 모래사장위에 쌓여가던 공든 탑이었다. 용산의 전자상가 한 구석에서는 정품을 이용하자는 포스터가 붙은 반면, 안쪽에서는 불법복사를 버젓이 정식인 듯 팔았으며, 유저들 또한 그것을 별다른 거리낌 없이 구입하였다. 심지어는 학교에서 조차, 시디 라이터기가 있는 학생들은 게임을 복사해 친구들에게 팔기도 했었다. (대부분의 경우 최후에는 교무실로 끌려갔지만.) 이런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아직 비디오 게임은 비전 있는 시장이었고, 계속 커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손노리 또한 발전하는 시장에 맞춰 혁신적인 게임을 하나 개발한다.

[포가튼 사가].  이전의 작품들에서 좋은 인상을 남겨주었던 손노리에서 꺼내든... 폭탄. 프리시나리오로 무장한 자유도 높은 롤플레잉 게임이어야 했으나, 결과물은 처참했다. 정말 게임을 구입한 이들 중 대다수가 진행을 포기해야 했다, 버그 때문에. [포가튼 사가]의 버그는 실로 게임계의 전설로 남을 정도로 위대해서, 제작사인 손노리조차도 완벽한 수정을 포기할 정도로 대책 없는 버그덩어리였다. 그래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불법복사에 당할 대로 당한 손노리의 대응덕분에, 불법복사에 따른 타격은 거의 없었다. 시디 게임이면서 시디 표면에 암호표를 새겨 버렸으니까. (필자는 당시 시디를 보고, 한참을 웃었다.) 다소 과잉이라 생각되던 이러한 대응은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저렇게 하지 않으면 팔리질 않았고 사지도 않았기 때문에, 딱히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포가튼 사가]를 시작으로 불안한 기반에 새워진 제작사들은, 위태위태하게 자사들의 대형 타이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손노리의 [포가튼 사가]처럼, 허무한 계획과 이룰 수 없는 일정 그리고 스폰서의 압박이라는 현실에 치여, 버그덩어리 내지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물을 내 보일 뿐이었다. 게임은 많이 나오나, 전체적인 품질은 오히려 이전만 못하였고, 표절은 문화현상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불법복사가 만연하는 시장에, 저 퀼리티 상품을 내놓는 악재에 악재가 겹친 지옥문, 그것이 한국의 게임시장이었다.

 “버그 때려잡겠습니다―! 버그 없습니다―!“ 개발진이 책상에 반쯤 쓰러져 있는 그 처절하던 광고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손노리의 작품은 [강철제국]. 그러나 필자는 당시 게임을 보자마자, 허허 웃을 수밖에 없었다, 표절이었으니까. [강철제국]은 특정 일본 시뮬레이션 게임의 목표, 시나리오, 유저 인터페이스 심지어는 초반 나레이션까지 고스란히 도용하고 있었다. 돈은 없고 돈 쏟아 부은 건 버그로 망했으니, 다른 게임 표절이라도 해서 매꿰야 하지 않겠는가, 이게 당시 게임사들의 실정이었으며 손노리도 대세에 따른 것이다. (지금은 우리 내, 훈훈한 전통으로 자리 잡아 버렸다. 오호 통재라!) 그래도 명색이 한국을 대표하는 제작사중 하나가, 안면에 철판 깔고 표절을 해버릴 만큼 패키지 시장은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특히 유통사와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사회 밝은 미래를 이끌어 가야할, 게임 잡지사들의 무분별한 '정품 게임 번들' 정책 덕분에, 시장의 몰락은 부스터전개 제로의 속도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하고 싶은 건 불법으로 하고, 소장하고 싶은 건 조금 기다렸다고 번들로 나올 때 잡지와 덤으로 구하는 꿈의 시대였던 것이다. (일장춘몽...)

꾸준한 노력[?]으로 자금을 모은 손노리는, 든든한 동료 '그라비티' (이 회사가 또 한 역사 한다...)와 손잡고. 한국 역사에 길이 남을, 패키지 최후의 한판을 벌이기로 한다. 바로 [악튜러스]. 그야말로 유종의 미라 할 수 있을법한 한국 패키지 시장 최후의 만찬. 필자는 발매당일 용산에 새벽부터 나가서, 이 게임 [악튜러스]의 한정판을 구하기 위해 눈물 나는 노력을 펼친 추억이 있는 게임이다. 이때까지 손노리는 지속적인 불법복제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었으며, 인터넷과 웹진의 발달로 인해 유저들의 게임시장에 대한 인식도, 90년도 초반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악튜러스]또한 뿌리 깊은 표절의 칼날을 피해 갈수는 없었는지, 결국 게임의 특정 몬스터가 일러스트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또한 게임 전투 시스템이 모 일본의 롤플레잉 게임과 실로 비슷해서, 이 또한 표절 아닌가 하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게임은 기대한 만큼 적절한 판매량을 보여 주었지만, 그만큼 게임의 표절에 대한 유저들의 배신감은 크나컸다.

울부짖던 불법복제 반대 운동의 실패, 대작의 표절시비... 한국의 게임시장처럼 끝없는 불운에 시달리던 손노리는 1년 뒤 조용히 하나의 게임을 출시한다. [화이트 데이]. 처음 발표가 된 것은 게임이 발매되기 수년 전 '게임피아' 귀퉁이에 나온 소개가 전부였으며, 때문에 기억하고 있던 이도 없던, 그런 어드벤처 게임이었다. 그러나 '왕리얼 엔진'이라는 위트 넘치는 이름의 자체 3D엔진을 사용하고, '학교 괴담'을 전제로 제작한 손노리 특유의 한국정서에 맞는 시나리오가 버무려진 그야말로 명작이었다. 정말 무서워, 덜덜 떨면서도 재미있어 손을 땔 수 없던 높은 몰입 도를 지닌, 정말 멋진 작품이었다.

그리고 [화이트 데이]는 판매량에 10배가 넘는 패치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성공에 실패한다.

정말 좋은 게임을 만들었고, 하는 이는 많았으나, 사는 이는 없었다.

돌아보면...

손노리의 연혁은 거의 불법복사와의 전쟁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한국의 모든 게임 제작사의 연혁은 불법복사와의 전쟁이며, 패배한 쪽은 그들 그리고 우리 게이머들이다.

오랜 시절 곪아온 상처가 터진 한해 2001년, 수많은 회사들이 온라인으로 급히 이전하거나,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뜻 있는 유통사들은 외국의 게임이나마, 높은 품질의 한글화를 통해 유저들의 관심을 끌어보려 했으나, 이마저 실패하고 만다. 2002년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은 이제, 해외 게임사의 자체 유통망을 재외하면 패키지 게임 유통사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된다. 이러한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한국의 게임 시장은 온라인으로 그 전장을 옮겨 아직도 힘든 싸움중이다. 유저와 제작사, 유통사 그리고 한국의 법이 바로잡아야할 한국의 게임문화. 손노리의 몰락이 또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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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추억의 패키지 게임...

    Tracked from DJ군 2008/01/24 21:51 Delete

    IMF... 불법복제로 인해 패키지 시장이 잠식당한 이후로..보기 힘들어진 패키지 게임(상자 속 게임).....그것은 보기 어려워 졌지만 그것과 함께한 추억은.. 지금도 소중하다..여러분 중에서도 어릴적 패키지 게임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추억거리... 지금 생각하도 웃음이 나온다..게임을 주문해놓고 설레는 마음으로 택배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밤을 새어보기도 하며, 기다리던 패키지를 받아 그 묵직한 느낌에, 정품을 샀다는 뿌듯...

Comments List

  1. 딱쮜 2007/11/22 02:22 # M/D Reply Permalink

    저 자신도 씁쓸하지만, 저기에 일조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지요.
    지금에 와서야 옛날 손노리 패키지가 보이면 구입해가고 있는데, 죄책감도 좀 들고 안타까운 기분입니다.
    온라인 시장도 힘겨워지고 있는걸 보면 이러다가 우리나라 게임업계가 몰락하는게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드는게, 좀 씁쓸하군요.

  2. dlimpid 2007/11/22 03:59 # M/D Reply Permalink

    많은 사건이 떠오르네요. ^^
    (전 기숙사에 살고 있어서) 얼마 전에 날씨가 추워지길래 어머니께 두꺼운 잠바와 목도리좀 보내달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어디서 찾으셨는지 악튜러스 한정판에 들어있던 목도리를 보내주셨더라고요... ^^ 저도 몰랐는데 "Arcturus"라고 쓰인 뱃지 같은 게 달려있는 걸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
    강철제국 광고 사진 책상 한 구석에 붙어있던 "스타하면 총살"이라는 메모를 보고 미친듯이 웃었는데, 그 얼마 후에 있었던 손발에서 "스타를 하던 직원을 총살했다"는 가상뉴스 동영상을 보고 또 미친듯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 그 때 왕리얼 엔진도 보여줬고 말이죠... ^^

  3. 흑염 2007/11/22 09:14 # M/D Reply Permalink

    포가튼 사가를 정품으로 구입해놓고 1주동안 손만 빨아야 했습니다.

    버그때문에 실행조차 안되었던 것입니다 -_-;;;

    긴급 패치가 PC통신망에 올라오고 난 뒤에야 겨우 실행을 할 수 있었지만
    중간 메인 이벤트중 팅김 문제로 또 손을 놓아야 했습니다 -_-;;;

    게임 자체는 프리시나리오를 표방하여 굉장히 다양한 캐릭터와 이벤트가 있었지만
    정상적인 실행조차 불가능한 상품을 판매했다는 것은 굉장히 실망스러웠죠.

    하프엘프-여성-마검사? 전사? 의 포스터가 패키지에 들어있었는데 침대 천장에 붙여놓고 헤벌레 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4. Krose 2007/11/22 10:41 # M/D Reply Permalink

    손노리..한 때는 정말 잘나가는 개발사였을지 모르나, 온라인 게임 제작으로 전환한 뒤에는 그저그런 개발사가 되어있죠. 어스토 온라인도 딱히 기대 안되네요..

  5. 소울오브로드 2007/11/22 12:56 # M/D Reply Permalink

    화이트데이는 음악 하나만으로도 짱먹고 들어갈 어드벤쳐 게임의 명작이였죠... 그래픽 깨짐이 피를 토했지만(먼산) 정품을 샀을때 받은 태극패 모양의 시디케이스가 아직도 제 방에 있습니다..

  6. 에픽좀비 2007/11/22 14:13 # M/D Reply Permalink

    울나라 불법복제의 심각성을 알았을때부터 국내게임은 악착같이 구입해서 하면서
    '제발 망하지 말아줘 한국시장'이라며 빌고 빌었엇는데ㅜㅜ
    손노리와 소프트맥스까지 무너질줄은 정말 몰랏더랫죠......
    갠적으론 악튜러스를 정말정말 재미있게 플레이했엇습니다.
    표절논란... 그란디아의 전투시스템과 비슷해서 문제가 되었었는데,
    조금 비슷하기는 하지만 악튜러스의 진짜 묘미는 스토리와 특유의 위트라 생각하기에
    아무 불만없이 즐겁게 즐겼었죠.

  7. 땅콩샌드 2007/11/23 22:12 # M/D Reply Permalink

    참, 한국 패키지 시장이 통째로 날아가 버릴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 1 : ... 4263 : 4264 : 4265 : 4266 : 4267 : 4268 : 4269 : 4270 : 4271 : ... 5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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